민화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민화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오늘날 사용하는 ‘민화’라는 명칭이 조선시대부터 쓰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란도, 문자도, 책거리, 까치호랑이 같은 그림을 자연스럽게 민화라고 부르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들을 지금과 같은 의미의 민화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민화’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그림이 제작된 시기보다 훨씬 뒤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민화 이름의 유래

조선시대에도 ‘민화’라고 불렀을까?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민화라고 부르는 그림을 하나의 독립된 미술 장르로 묶어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림의 소재나 용도에 따라 모란도, 화조도, 책거리, 문자도, 장생도, 세화 등으로 구분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속화’라는 표현도 나타납니다. 다만 속화 역시 오늘날의 민화와 정확히 같은 범위를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시대와 문맥에 따라 통속적인 그림, 세속의 모습을 그린 그림 또는 특정한 화풍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조선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생활 그림을 후대의 연구자들이 ‘민화’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와 ‘민화’라는 이름

오늘날 미술 용어로 사용하는 민화라는 명칭은 일본의 사상가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민화 관련 자료에서는 야나기가 1937년에 민화라는 명칭을 제안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민화를 대략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정의했습니다.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해 그려지며, 민중에 의해 구입되는 그림.

이 정의는 유명 작가의 개성과 서명보다 이름 없는 제작자와 대중의 생활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미술사에서 크게 평가받지 못했던 생활용 그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민화’라는 용어가 바로 한국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야나기가 민화라는 표현을 제안했다고 해서 한국에서 곧바로 널리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자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민화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진 시기를 1970년대 무렵으로 설명합니다.

이 시기에는 민화 수집과 전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조자용을 비롯한 연구자와 수집가들은 그동안 미술사에서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던 이름 없는 그림을 발굴하고 소개했습니다.

민화는 점차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 한국 전통회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일반 백성의 생활과 소망이 담긴 그림
  • 작가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생활 장식화
  • 같은 소재가 반복되면서 자유롭게 변형된 그림
  • 한국인의 미의식과 해학을 보여주는 그림

민화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

민화라는 명칭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간단하지 않습니다.

민화를 오직 서민이 그린 그림으로 한정하면 궁중화원이나 숙련된 직업 화가가 제작한 장식 그림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궁중장식화와 종교화, 지방 관아의 그림까지 모두 민화에 포함하면 개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습니다.

민화의 범위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제작자의 신분과 전문성
  • 그림을 주문하거나 구매한 계층
  • 그림이 사용된 공간
  • 장식·의례·신앙 등 제작 목적
  • 특정한 본을 반복하고 변형한 방식
  • 작가의 개성보다 공동체의 관습이 강조됐는지

연구자마다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민화의 범위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궁중장식화도 민화일까?

민화의 범위를 논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궁중장식화입니다.

일월오봉도, 십장생도, 모란도, 책가도 등은 궁중에서 사용됐지만 비슷한 소재가 민간에서도 널리 그려졌습니다. 궁중에서 만들어진 그림이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구도와 색채가 단순해지거나, 지역과 제작자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궁중장식화를 넓은 의미의 민화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가 세분화된 뒤에는 궁중장식화를 민화와 구별되는 영역으로 다루면서 두 그림 사이의 영향 관계를 살펴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궁중에서 사용됐다는 이유만으로 민화라고 하거나, 반대로 전문 화원이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민화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그림은 존재했다

‘민화’라는 이름이 근대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민화의 역사도 그때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문에 수호신 그림을 붙이고, 집 안에 장수를 기원하는 병풍을 세우고, 혼례와 잔치에 꽃 그림을 사용했습니다. 문자도와 책거리, 화조도처럼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그림도 널리 제작됐습니다.

이 그림들은 ‘민화’라는 이름을 갖기 전부터 각자의 용도와 명칭으로 존재했습니다. 후대에 만들어진 민화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생활 그림을 함께 살펴보고 그 공통점을 설명하는 틀이 된 것입니다.

민화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주의할 점

특정 작품을 소개할 때는 무조건 민화라고 부르기보다 박물관의 작품 정보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물관에 따라 같은 유형의 그림도 다음과 같이 다르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 민화
  • 궁중장식화
  • 일반회화
  • 화조화
  • 문자도
  • 책가도
  • 장생도
  • 작가 미상 회화

작품의 제작자, 사용처, 재료와 기법이 새롭게 밝혀지면 분류가 바뀌기도 합니다. 민화는 경계가 명확하게 닫힌 장르가 아니라 연구에 따라 범위가 계속 논의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

오늘날 사용하는 민화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동일한 의미로 존재했던 명칭이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는 그림의 소재와 용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근대 이후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화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전후로 연구와 수집이 활발해지면서 이 명칭이 널리 정착했습니다.

따라서 민화는 오래전부터 존재한 그림이면서 동시에 후대에 새롭게 정리된 미술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민화를 단순히 ‘서민이 그린 옛 그림’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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